[데스크칼럼] 글로벌 스크랩가격 풍향계 튀르키예

2023-02-14     박준영 기자

튀르키예는 어떻게 세계 스크랩시장의 중심이 됐나

세계 최대 비철금속 상품거래소인 런던금속거래소(LME)가 철강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2015년 11월 철스크랩을 신규 상장(上場)하면서 삼은 기준지표는 HMS No1&2 80대20 스크랩 이스켄데룬(Iskenderun)港 도착도 단가였다. HMS No1&2 80대20은 우리나라 경량A에 상당하는 품질인데, LME 측은 기준지표 선정에 대해 유럽에서 가장 많은 거래가 이뤄지는 대표 스크랩 품목이자 지역이라고 소개했다. 

LME 상품거래의 기준이 되었다는 상징성 때문에 더 유명해진 튀르키예 동남부 하타이주의 항구도시 이스켄데룬이 지금 최악의 강진(强震) 사태 중심에 있다. 미국이나 유럽 주요국이 아닌, 튀르키예가 세계 철스크랩시장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것은 지리적인 특성이 크게 작용했다. 튀르키예는 국토의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관문이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해상인프라가 발달했는데, 그 결과 항구가 300개나 된다. 

여기에 독특한 철강수급구조 역시 튀르키예를 세계 철스크랩시장의 중심에 올려 놨다. 튀르키예 조강생산 규모는 3510만톤(2022년 기준)으로 세계 8위, 3개의 고로사와 18개 전기로제강사가 사용한 스크랩이 3480만톤(2021년 기준)으로 중국(2억2600만톤), 미국(5940만톤) 다음으로 많고 일본(3470만톤)을 근소한 차이로 앞선 3위를 차지했다. 조강생산대비 스크랩소비비중이 86.1%(2021년 기준)로 세계 10대 철강강국 가운데 1위이고 조강생산대비 전기로 사용비중도 세계 최고 수준인 71.5%(2021년)로 스크랩을 많이 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참고로 조강생산대비 전기로 사용비중 세계 평균은 28.9%(2021년)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스크랩을 사용하는데도 정작 스크랩 자급률은 30%에도 미치지 못해 사용량의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스크랩자급률은 철강축적량에서 나오는데 철강제품 생산량의 55%를 중동 등지로 수출하다 보니 튀르키예 국내에 남는 철강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튀르키예의 철강축적량은 5억2000만톤(2021년말 기준)으로 한국(7억9000만톤)보다 적지만 상당한 규모를 갖고 있어 자급속도는 점점 빨라질 전망이다.

튀르키예는 2021년 2500만톤의 스크랩을 수입해 역대 최대기록을 세운 동시에 부동의 세계 1위를 수성했다. 세계 물동량의 25% 수준이고, 평균 500만톤 수준인 2위 그룹 국가들 수입량과는 5배나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100년 안에 튀르키예를 능가할 국가는 없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스크랩사용비중이 가장 높고 가장 많은 양을 수입을 하기 때문에 글로벌 스크랩가격을 선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지리적으로 먼 아시아 시장까지 튀르키에 스크랩가격 변화가 영향을 미치는 까닭은 스크랩이 국제 원자재 상품군에 속해 유가와 구리 같이 글로벌 시장을 한 데 묶는 특성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데이터를 분석하면 튀르키예 스크랩 수입시장 가격추이를 따라 주요국 스크랩가격이 시차를 두고 쫓아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튀르키예와 한국 스크랩시장가격의 타임래그는 평균 4주다.

이처럼 튀르키예가 글로벌 스크랩가격 형성에 있어 막대한 영향력을 갖다 보니 튀르키예 경제상황 뿐 아니라 종교 문화적 이슈에 대해서도 세계 스크랩시장 관계자들이 주목할 수 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라마단이다. 이슬람 최대 연례행사인 라마단 기간이 해마다 1개월에 이르고 이 기간을 전후해 이슬람 국가들의 산업활동이 제한 받기 때문에 글로벌 스크랩가격에 커다란 변수로 등장한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7년간 라마단 시작 전(3주간 기준) 튀르키예 수입시장 가격이 상승한 경우는 5회로 확률상 무려 71%를 기록했다. 통상 현지 철강업체들이 라마단 기간에 사용할 재고까지 넉넉하기 비축하기 때문에 특수가 발생하고 가격은 오르는 것이다. 라마단은 해마다 한달 씩 빨라져 올해는 3월22일부터 4월21일까지다.

2월 6일(현지시각) 발생한 최악의 튀르키예 강진사태로 일주일 째 글로벌 스크랩가격 풍향계는 멈춰 있다. 세계 스크랩가격 향방의 출발점 자체가 붕괴되는 바람에 다른 대체 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규모 자연재해나 전쟁이 발생하면 관련 연관시장이 즉각 반응했다가 어느 시점에서 회복하는 수준을 밟게 되는데 지금 튀르키예 상황은 이런 패턴과 상당히 다른 결을 보여준다.

이른 감은 있지만 튀르키예 사태가 수습되기 전까지 세계 스크랩시장에는 20~25%의 수요불안이 발생하게 될 것이고 이는 글로벌 가격하락의 도화선으로 작동할 것이다. 여기에 재건과정에서 발생하게 될 건물해체 스크랩이 또 다른 수급변수로 등장해 이 땐 일시적인 공급과잉을 유발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노폐스크랩은 철강축적량의 1~2% 정도 발생하는데, 전쟁과 재해 등 특수 상황에는 철강축적량의 최대 20%까지 노폐스크랩이 급증할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