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올때 우산 같은 거래처 : 단골 경제학

2021-11-05     박준영 기자

[데스크칼럼]

요소수 품귀사태로 물류대란 위기가 확산 중인 4일 충남 천안의 한 중상(中商) 대표는 “오늘부로 거래하던 주유소를 교체했다”고 말했다. “요소수 품귀사태가 하루이틀만에 이렇게 빨리 우리 현장까지 닥칠지 몰랐다”며 “정작 당황스럽고 화가 나는 건 거래 주유소의 대처방식”이라고 개탄했다. 

“포크레인 2대, 집게차 4대에 들어가는 한달 기름값만 1천만원이에요. 적은 돈인가요? 적어도 주유소 사장이라면 요소수 사태의 심각성을 일반사람들보다 먼저 알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단골 고객에게는 귀띔을 했었어야지, 이제 와서 ‘죄송하다’는 말이 무슨 소용 있느냐”며 격앙했다. 그는 월 1천만원씩 결제해주던 주유소로부터 요소수 1통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거래 주유소를 옮긴 것은 요소수를 못 구해줬기 때문이 아니다. 파트너 관계가 깨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년간 스크랩업체 대표들을 만나 인터뷰해보면 유독 ‘신뢰’ ‘신용’ ‘의리’ 같은 덕목을 최우선 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려울 때 물심양면 도와준 고마운 거래처도 있고 반대로 물건 빼는 도중에 단가가 올랐다며 일방적으로 거래 중단을 선언한 이기적인 거래처, 단가 따라 이리저리 재고 옮겨 다니는 철새 거래처에 관한 얘기를 듣게 된다. 그들을 통해 타산지석으로 삼거나 거꾸로 반면교사로 삼는다.

가용 차량규모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든 방통차 운수회사들도 요즘은 단골 마케팅으로 완전히 돌아선 것을 느낄 수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아쉬운 소리 하기 보다 충성 고객들에게 집중하고 최선의 서비스로 보답하는 것이다. 급할 때만 찾는 이른바 ‘뜨내기’ 상인들은 배차에서 후순위로 밀리고, 배차가 되더라도 상대적으로 운반비가 높다. 요소수 사태로 시끄러운 요즘 방통차 기사 몇 명과 운수회사 대표들을 취재했더니 의외로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내가 못 구하면 대한민국 사람 모두 못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방통차들은 결제편의상 특정 주유소와 오랜 기간 거래하기 때문에 나름 주유소의 VIP 고객들이어서 요소수 문제는 적어도 거래 주유소에 믿고 맡기는 듯 했다. 스크랩 최종소비자인 제강사 역시 ‘패밀리’ ‘매칭’ 등 이름은 틀리지만 납품협력사를 2차 3차까지 확장하고 납품 항상성(일정하게 꾸준히 입고되는 정도)을 충성도의 최고 지표로 삼아 평가와 보상하려는 것은, 일종의 단골 마케팅으로 봐야 한다.

스크랩산업계가 이처럼 신용과 의리로 얽힌 단골 거래처를 중시하는 이유는 신규 고객이 사실상 없고 절대적으로 단골 거래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새로운 고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과 비용보다 단골을 유지하는데 드는 관리비용이 훨씬 적게 들며 효과적이고 장기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준다. 때문에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과 딱 부합하는 산업 가운데 하나가 스크랩이다. 그러므로 폐쇄성과 구속력이 강한 스크랩시장에서는 평판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좋은 평판은 낮은 단가로 고철(古鐵)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것과 같다. 단기고점에 도달하는 결정적인 순간 큰 성과로 돌아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