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古鐵시장에 들어온 트로이의 목마

2021-08-12     박준영 기자

철스크랩은 요즘 단군이래 가장 ‘핫’한 자원(資源)으로 주목받는다. 시장가격도 2008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뛰어, 올해 주요 기업 평균매출이 전년대비 70% 이상 증가하는 등 연말 실적잔치를 예고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말레이시아 등은 올 들어 무역관세를 조정해 수출규제에 들어갔거나 검토 중이다. 각국에서 자원무기화 조짐이 시작된 것을 보면 달라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스크랩 소비자인 철강업계 인사 중에는 ‘이제 스크랩은 만년 ‘을’이 아닌 영원한 ‘갑’’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바로 탄소중립 때문인데, 수소환원제철 상용화라는 거대 프로젝트가 현실화되기 전까지 철강업계의 스크랩의존도는 기술 및 수급적 한계치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더군다나 수소환원제철 상용화는 상당히 먼 이야기라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성공여부를 당장 확신하기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전 세계 정부와 철강업계가 스크랩에 열광하는 것과 스크랩기업의 위상은 별개의 문제다. 탄소중립이 가져다 준 ‘선물’ 이면에는 새로운 경쟁자들의 거센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더 센 경쟁자들이 가만 둘리 없다. 외부에서 들어온 요인에 의해 내부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탄소중립은 '트로이의 목마'와 같다.

우리 스크랩업계가 외부 요인에 취약하다고 보는 첫 번째 근거는 낮은 시장지배력이다. 2020년 기준 국내 매출 1위 스크랩기업의 시장점유율은 4.7%(스크랩워치 추정치)에 불과하고 빅3 점유율도 13%에 그친다. 탑10의 점유율 역시 30%를 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低성장·수축기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느 업종·시장을 막론하고 상위 10개사 점유율이 60%를 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른바 대형화 효과다. 참고로 경쟁소재인 철광석의 글로벌 점유율은 브라질 발레, 호주의 리오틴도 및 BHPB 등 빅3가 60% 이상 가져가면서 과점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저성장 시대에 시장지배력이 낮다는 사실은 과점화 압력이 그만큼 커진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해외 또는 대형 자본 유입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더욱이 지구온난화로 철스크랩이 대체불가 자원이 된 마당에 눈독을 들인 외부세력의 시장진출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실제 미국 중국 독일 인도 등 세계 주요 철강국가에서는 초대형 철강사들의 스크랩시장진출이 작년부터 두드러지고 있다. 세계 전기로조강생산 1위 미국 누코어(Nucor)는 지난 2008년 데이빗 J 조셉컴퍼니(DJJ)라는 스크랩기업을 인수해 일찌감치 원료부터 제품까지 수직 계열화를 구축했는데, 이후에도 DJJ를 통해 5개 이상 스크랩기업을 사들여 현재는 미국내 27개 야드에 연간 110만톤 가공능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 2위 전기로제강사 스틸다이내믹스 역시 옴니소스(OmniSource)라는 스크랩 자회사가 전국적인 수집, 처리, 물류 기능을 맡고 있다. 지난해 단일 철강사 최초 1억톤 조강생산을 돌파한 세계 1위 철강사 중국의 보무강철그룹(宝武鋼鉄集団)은 2020년 2월 스크랩자회사 구야연금재생자원(欧冶链金再生資源)유한회사를 설립해 그해 3월까지 2,400억원(원화기준)을 쏟아 부어 전국적인 유통망을 확보했다. 보무강철은 2021년 스크랩취급량 2,800만톤, 오는 2025년까지 1억톤을 각각 목표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세계 9위 철강사 타타스틸이 2020년 7월 연간 50만톤 가공능력의 슈레더, 압축기 가공공장을 설립했고 중소상 공급망까지 확대하기 위해 모바일(App) 거래시스템을 도입했다. 중국과 인도는 올 상반기 한국의 철스크랩 수출 1위, 2위를 기록한 나라다. 유럽에서는 독일 최대 철강사 티센크룹이 2020년 6월 스크랩회사를 설립해 직접 시장에 진출했다. 우리나라도 대형 철강사, 혹은 대규모 자본에 의한 스크랩시장의 직접 진출이 곧 닥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 스크랩업계는 방통차(車) 부족, 집게차 기사구인난 및 고령화, 주 52시간근무제 같은 일선 현장의 애로사항에 직면해 있고, 표준산업분류상(대분류기준) 지난 2008년부터 제조업(D)에서 비제조업(E, 수도 하수 및 폐기물처리, 원료재생업)으로 돌연 변경돼 세제혜택과 입지의 제한을 받아 대형화하는데 발목이 잡힌 상태다. 이런 해묵은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탄소중립은 좋은 기회로 다가왔지만 동시에 대기업, 대형자본의 시장진출이 이뤄지면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스크랩업계가 지금보다 나은 대우와 정당한 보상을 받으려면 시스템화가 선행돼야 한다. 개별기업과 업계의 노력은 분명 한계가 따르고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기 일쑤다. 언론이나 단체를 통해 끊임없이 정부를 움직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