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업계는 집단주의 문화와 융화되어야 한다

2020-12-30     노재석 스크랩을 말하다 著者·前동부제철 상무

[신년칼럼]

우리 사회의 마스크 착용 획일화는
개인보다 집단 우선하는 문화 때문
코로나로 집단 중심적 속성 드러나
反사회적 대상엔 배제 공격성 발현
스크랩업계가 사회관계 개선하려면
집단주의 문화 속성 먼저 이해해야

 
2020년 가장 익숙한 풍경은 하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일 것이다. 누구라 할 것 없이 하얀 마스크로 획일화 된 세상을 보면서 코로나19의 위력을 실감한다.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이 사실상 유일한 방역 수단이라는 사실 앞에서 눈부신 생명과학기술은 일순간 무색해졌다.

마스크 착용이 숨쉬기는 물론 사회적 관계 활동에 많은 제약을 야기함에도 대부분 사람들은 그다지 불평 한마디 없다. 코로나 감염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 사회 일부에서 마스크 착용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들 국가들은 의료 선진국이며 문화적, 경제적, 과학적으로도 선진국이다. 이들 국민들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 국민에 비해 의학상식이나 사회의식이 부족해서 방역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라는 불가피한 선택에 반발한다고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마스크 착용에 대한 동서양의 상반된 반응은 무엇보다 수천 수백 년 동안 다르게 형성되고 발달해온 문화적 속성에서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문화 학자들은 삶을 지배하는 문화 속성을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동남아 국가들은 집단이 추구하는 가치가 개인보다 우선 시 되는 집단주의 문화 속성을 지닌 반면 서유럽 미국 등 국가에서는 개인의 가치추구가 집단의 가치보다 우선 시 하는 경향, 즉 개인 중심적인 문화 속성을 갖고 있다. 마스크 착용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극명하게 차이나는 것도 이러한 문화적 속성에서 오는 현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마스크 착용에 대한 상반된 태도

문화적 속성의 차이와 상관없이 얼굴의 반 이상 가리는 마스크 착용은 사회적 관계 활동에 불편과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 사실이다. 인류는 지난 수만 년 간 얼굴에 나타나는 다양한 표정언어를 통하여 공감하고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사회적 관계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마스크는 얼굴이 어떠한 감정 상태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일종의 하얀 어둠의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상대에 대해 알 수 없는 불확실 상태에서는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적 활동이 어렵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별다른 불평 없이 이를 받아들인다. 더군다나 ‘거리두기’는 사회적 시스템이 마비될 정도로 사람들로 하여금 고립생활을 강요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다지 거부감을 표하지 않으며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받아들인다. 전염병이라는 사회적 위험에 대해 마스크 착용이라는 행위를 통해 사회적 대응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은 사회집단을 해하려는 잠재적 위험으로 보고 적대시하며 집단에서 기꺼이 배제하려 한다. 지하철 이용자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며 싸움이 벌어졌다는 뉴스는 사회적 위험 대응에서 나타나는 집단주의 문화 속성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급속한 경제 발전과 서구화로 개인 중심 가치관의 문화로 바뀐 줄 알았던 우리 사회가 기존의 집단주의 문화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흰색 마스크를 통하여 확인시켜주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 마스크로 드러난 집단주의 문화

코로나19 사태초기 감염확산 방지라는 명목으로 확진자의 개인정보는 물론 세세한 동선까지 공개되어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신용카드, 휴대폰 등은 개인의 일상생활을 감시하는데 위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미 IT관련 기업에서는 개인 소비생활에 정보, 상품, 취미 등 다방면에 걸쳐 ‘관심 종목 추천’이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에 은밀히 개입하고 있다. 이는 개인 신상정보는 물론 소비행태, 취미 등에 관한 세세한 정보를 오래 전부터 수집하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번 코로나19는 행정 기관이 사회적 위험을 이유로 ‘○人 이상 집합금지’, ‘○○업종 영업제한’, ‘안면인식출입허용’ 등과 같이 다방면에서 사생활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묵시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하고 의식과 행동의 통제가 자연스러워진 사회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었던 사생활의 영역은 개인 동의라는 반 강제적인 요식 행위를 통해 유리상자 안에 들어갔다.

코로나19가 몰고온 사회적 시스템 기능이 마비되는 상황은,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다. 미국, 독일, 영국 등 의학 선진국에서 유명 제약사들이 예방백신을 개발하고 정부가 이를 승인 접종하기 시작하였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전 세계적 감염 진행에 비해 백신 공급은 제한적이어서 백신 접종으로 집단 면역이 형성되기까지 앞으로 수개월 또는 수년을 마스크에 의존한 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더구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변이를 계속하고 있으며 전염 확산에 적절한 조건이 만들어지길 기다리고 있는 미지의 치명적 바이러스 질병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마스크 착용이 의복처럼 일상화될지 모르겠다. 

과거와 달리 바이러스 질병은 2000년대 들어서만 코로나19를 비롯하여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 등 거의 5년마다 한 번 꼴로 발생되고 있다. 이런 사실에 비춰 보면 ‘마스크 착용의 일상화’는 단순한 가설로 간과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코로나19의 전염 매개원이 박쥐였던 것처럼 대부분의 바이러스 질병이 돼지, 조류 등과 같은 동물들로 밝혀졌다. 이는 인간에 의한 자연 생태계 파괴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자연 생태계 복원 및 보호를 위해 친환경 산업구조 개편을 목표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단순히 기후 변화라는 거시적 측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철스크랩산업에 있어서 ‘철스크랩’은 그 자체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얼굴언어이다. 그 어떤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다. 매번 다른 중량감, 색감, 모양 등으로 말하는 무언의 언어를 통해 공감하고 신뢰관계를 구축하기에 다른 업종처럼 코로나19와 흰색 마스크에 의한 사회 관계적 제약은 크게 없었다. 

하지만 간혹 거리에 걸려 있는 ‘스케일, 산소 똥 삽니다’ 현수막이 스크랩을 표현하는 언어로 둔갑될까 두렵다면, 기우일까? 스크랩업계는 급속한 경제발전과 서구화로 사라진 줄만 알았던 우리 사회 집단주의 문화 속성이 아직까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사회적 위험의 제거라는 명목으로 감시 통제가 행해지는 사회에서는 배제의 속성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발현된다는 사실을 늘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경제성장기의 철스크랩업이 자원재활용 원료공급의 역할자로서 평가되었던 것처럼 친환경 중심으로 변화되는 미래 산업구조에서 긍정적인 환경업종으로 재조명되어지는 2021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