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원(kg)에 사서 60원 손해 났다 더 기다릴까 손절매가 답일까

2020-05-13     윤연순 기자

[취재수첩]

본전심리와 매몰비용

‘(단가)안 맞는 거만 빼고, (있는 재고) 다 냈어요’ 

스크랩업체를 방문하면 자주 듣는 얘기다. 마당에는 두 종류의 고철(古鐵)이 있다. (단가)맞는 것과 안 맞는 것이 그것이다.

작년 가을에 350원(kg)짜리 물건을 사서 7~8개월 지난 현 시점까지도 팔지 못하는, 아니 팔지 않는 상인들이 꽤 된다. 그 사이 시세차손은 60원 난 상태다. 이럴 때 나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흥미로운 사실은 신구(新舊) 세대에 따라 대처방식이 달라진다고 한다. 구(舊)세대 또는 구세대로부터 고철(?)을 배워 같은 방식을 고수하는 경영2세들은 대체로 시세가 매입단가를 웃돌 때까지 팔지 않고 기다린다. 반면 신(新)세대들은 일단 손절매로 털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 구세대 시각에서 ‘저건 그냥 350원 짜리 물건’인 것이고, 신세대들은 평균 매입단가로 보는 것이다.

1년이고, 2년이고 350원이 될 때까지 안 파는 데는 손해를 만회하고 싶은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 ‘한 번은 오겠지’라는 기대와 그간의 경험이 작용한다. 왕년에 시세차이로 왕창 벌기도 하고 까먹기도 한 그런 경험말이다. 한 중상 대표는 “모았다가 한 번에 1천톤씩 처분하면 3~4억이 통장에 꽂히던 그 때의 짜릿한 기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경제학적 관점에서 고단가 악성재고를 장기간 가져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물건을 처분하지 않고 흘려 보낸 시간은 회수하지 못하는 비용이다. 매몰비용이라고 하는데, 묻혀 버려 돌이킬 수 없다. 이미 사라진 시간, 사라진 기회에 미련을 갖는 것은 더 큰 손해를 불러온다. 손해를 만회하려는 생각 때문에 다른 결정을 막는다. 

스크랩업계의 한 40대 젊은 경영자는 “고단가 재고라서 해서 처분하지 못하면 그만큼 재고가 쌓이게 되고 심리적 부담과 자금압박을 받게 돼 결과적으로 영업활동을 제한한다. 이는 물건을 사고 팔고 계속 돌려야 하는 유통의 본질과 거리가 있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 STS스크랩 800톤을 2,500원(kg)에 사뒀다가 단가가 맞지 않아 10년째 마당에 묻어 두고 있는 지인이 있다고 했다. STS스크랩 시세는 현재 1,100원 내외 수준이므로 액면으로만 11억원의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다시 ‘350원짜리 재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의 논쟁으로 돌아와서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상인들은 ‘포기하기에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몰비용을 따지면 더 멀리 가기 전에 포기하는 것이 맞다. 지금 결정에 영향을 주는 것이 이미 투입된 과거의 비용인지, 미래의 비용인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는 것은, 합리적인 재고장사에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