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던 회사 망하고 깨달았죠. 한 눈 팔면 안 된다고”

2020-04-08     윤연순 기자

[인터뷰] 최정원 정원스틸 대표

제강사 직납업체서 14년 영업
다니던 회사 폐업 창업 도전
부족한 자금은 신뢰로 극복해
2년 만에 투자금 모두 회수
우리業, 긍정마인드 가져야

“스크랩으로 큰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전성기가 지났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여전히 스크랩은 매력적인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원스틸 최정원 대표는 20년 전 경기도 시화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손꼽히는 제강사 직납업체에서 처음 스크랩을 배웠다. 안타깝지만 그 회사는 6년 전 폐업하고 시장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무너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할 만큼 책임감과 애정을 가지고 일했기에 회사의 폐업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대형 스크랩기업의 몰락은 비단 그 업체만의 일이 아니다. 스크랩시장을 쥐락펴락했던 몇몇 대형 업체들이 불과 10년 사이에 문을 닫고 간판을 내린 것이 부지기수다. 정 대표는 이런 대형 기업들이 폐업의 길로 가는 데는 공통적인 문제점들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스크랩만 해서는 절대 망하지 않았을 거예요. 1세대 경영인들 대부분은 맨손으로 시작해 몇 천억 매출을 일군 자수성가형 기업인들이잖아요. 역으로 생각하면 그 분들은 스크랩 밖에 모른다는 얘기죠. 그렇게 스크랩만 바라보던 분들이 전혀 연관성 없는 생소한 일로 어떻게 성공을 할 수 있을까요. 다변화도 좋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들이 많습니다.”

최 대표 역시 이런 이유들로 자신의 직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 후 그에게 찾아온 시련과 선택의 순간에서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2014년에 다니던 회사가 폐업하면서 살 길을 찾아야 했어요. 10년 넘게 해온 스크랩을 그만둘 생각은 없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당시 몇몇 대상들의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지만 선 듯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낮선 조직에서 다시 적응하고 실적을 유지하는 게 겁도 났고 솔직히 내 일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더 나이 들기 전 마지막 도전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는 스크랩 회사를 직접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다니던 회사의 경영진과 동료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고 도움을 요청했다. 1년간 꼼꼼히 시장조사를 진행하고 거래처 동정도 살폈다.

“시장을 냉정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먼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실패 요인을 분석했고 발품을 팔아 현장의 목소리와 수치화된 데이터를 활용해 향후 시장에 대한 전망도 해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고 곧바로 전 직장의 설비와 자재를 인수하면서 창업을 준비했죠.”

문제는 자금이었다. 전에 다니던 회사의 배려로 작업 환경(야드, 설비 등)을 만드는데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기존 거래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목돈이 필요했다. 부족한 자금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야드와 압축기 등 기본적인 작업시설은 어떻게 갖췄지만 정작 스크랩을 사올 자금이 부족했죠. 더 이상 선택의 여지도 없었어요. 거래처에 물대(물품대금)는 1달 뒤 후납으로 해줄 것을 요청했어요. 먼저 물건을 받고 납품 후 수금한 돈으로 결제할 요량이었죠. 신뢰의 중요성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오랫동안 나를 지켜봐준 거래처 사장님들은 쉽지 않은 결정과 응원까지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고 그분들의 믿음에 꼭 보답하겠다는 다짐으로 밤낮 없이 일했어요.”

그는 2015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정원스틸을 경기도 화성에서 창업했다. 간절하면 이뤄진다고 했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기회가 찾아왔다.

“2015년 가을쯤으로 기억합니다. 일본이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서 일본내 스크랩 발생량이 급격히 증가했던 적이 있어요. 그 스크랩이 한국으로 수출되면서 국내 스크랩 단가가 큰 폭으로 하락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중량 스크랩 단가가 120~140원 정도로 바닥을 쳤으니까요. 저가에 구매한 스크랩을 2배 이상 마진을 보고 팔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거든요. 정말 절실한 상황에서 찬스가 온 거죠.”

그렇게 그는 2년 만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창업에 들어간 비용을 그때 모두 회수하면서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해졌다. 한 기업의 오너가 되면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회사가 안정되면서 경영자로서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실행해 옮기기 시작했죠. 먼저 우리 업에 대한 생각부터 제대로 바꿔야 했어요. 이 업을 하고 있는 우리 스스로도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남들에게 얘기할 때 그런 부분이 부정적으로 표출 되거든요. 자부심까지는 아니더라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는 게 꼭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환경을 조금씩 바꿔야 해요. 사무실도 잘 꾸미고 정돈해야하고 야드에서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보호 장구를 철저히 구비하고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직원들과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형 동생하면서 가족처럼 일을 합니다. 서로 배려하고 아껴주는 마음이 더 커진걸 보면 작은 규모의 기업에서는 괜찮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최 대표는 “요즘 업계분위기는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다른 산업에 눈을 돌리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며 “힘의 논리가 아닌 시장을 만들고 다져온 일반 상인들간의 정상적인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면 불안감은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수요-공급사간 상생과 협력이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