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찾아온 연쇄 입고중단 … 잉여시대 개막의 전조인가

2019-10-18     박준영 기자

제품 수요·생산예측 빗나가 원료 구매중단
설비고장, 보수 아닌데 입고중단은 이례적 
철근경기 7년만에 최악 … 장기침체 가능성
‘일회성 아닐 수도’ 잦은 입고제한 예고
자급초과시대엔 납품협력사 파트너십 흔들  
제강사는 품질 가격중시 구매전략 전환

금년 4월 이후 매달 주요 제강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 돌아가며 1~2주씩 입고(전면)중단을 하더니 10월 들어 급기야 대부분 제강사가 입고제한을 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만성 공급부족에 익숙했던 시장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1년만에 낯선 풍경과 만나면서 상인들 사이에서는 불안감을 넘어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올들어 굵직한 입고중단만 다섯 차례다. 4월 중순부터 6월말까지 78일간 한국철강의 전면입고 중단(전기로 사고로 인해)을 시작으로 7월말부터 8월초 사이 13일간 세아베스틸(감산), 8월 중순부터 하순사이 12일간 YK스틸(인명사고 조업중지), 10월 첫 주 5일간 동국제강(인천), 10월 초부터 중순 사이 12일간 한국특수형강(감산) 등이 잇달았다.

게다가 10월부터 국내 11개 제강사 대부분이 입고제한에 들어간 상태다. 한국철강과 YK스틸은 각각 조업중단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치더라도 설비보수나 고장이 아닌데 1~2주씩 주원료를 사지 않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시장 상인들이 불안감을 넘어 공포감에 휩싸인 이유도 이처럼 상식을 넘는 구매패턴의 변화 때문이다. 거대 생산시설과 조직을 운용하는 대기업 제강사가 시간 또는 총량 입고제한 대신 아예 구매중단을 결정했다는 사실은, 그간 무엇보다 안정적인 원료수급을 중시해온 태도와 정면 배치된다. 이는 내부 시스템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아 생산계획 예측을 잘못하고 재고조정에 실패했거나 외부요인에 의해 극단적인 판매감소가 있다는 추측을 낳게 한다.

이는 철강통계에서 어느 정도 확인이 되는 부문이다. 전기로 제강사 생산비중의 50% 이상 차지하는 철근의 경우 금년 9월 내수판매가 65만톤에 그쳐 2016년 2월 이후 3년 7개월만에 가장 적었다. 9월 판매목표 80만톤에서 15만톤 미달한 것이다. 10월 목표도 86만톤이지만 실제 목표달성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10월 판매량을 좋게 잡아 75만톤이라고 했을 때 최근 3개월간(8~10월) 판매량은 215만톤이 된다. 이는 2018년 같은 기간대비 17.6%(261만톤), 2017년 같은 기간대비 22.7%(278만톤) 감소한 것인 동시에 2012년 8~10월(211만톤) 이후 7년만에 최저다.

앞서 철근경기 선행지표인 주택착공실적은 2018년 6월부터 경고등이 켜졌었다. 가장 최근 실적인 2019년 8월까지 15개월간 13개월이 전년동월대비 20% 이상 감소율을 기록했다. 부진한 선행지표 추이로 보면 진작에 철근경기가 꺾였어야 했는데, 예상보다 5~6개월 더 호조세가 이어졌고 9월부터 본격적인 수요가뭄이 나타난 것으로 판단된다.

한 중견 전기로제강사 관계자는 “30년 가까이 있으면서 제품(판매)시황이나 분위기가 이렇게 안 좋은 경우는 처음”이라며 "급작스런 경기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른 전기로제강사 구매담당은 “’(제품)영업파트에서 너무 어렵다’는 얘기가 계속 나와 회사차원에서 수급계획을 갑자기 보수적으로 전환했다”며, “납품협력사들에게 (입고제한에 의한 구매계획 차질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니 미리 준비하라는 취지로 설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중 한 중상(中商) 대표는 시장에 최근 공포감이 급속도로 확산된 배경에 대해 “입고중단이나 입고제한보다 경량B 이하나 선반설, 산소절단물 등 저급 스크랩 판로가 사실상 차단된 것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본격적인 잉여시대의 징조로 보는 시각도 있다. 노폐스크랩을 중심으로 공급은 매년 늘어나는데 제품 불황으로 소비가 줄면서 자급초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지난 9월 20년만에 처음 철스크랩 수입 ‘제로’를 기록했고 2~3년내 1천만톤 이상 거대 수출국 전환 가능성도 있다.

공급증가 때문이든 수요감소 때문이든, 국내 스크랩시장의 자급초과 현상은 제강사의 구매전략 변화를 가속화 시킬 것이다. 한 전문가는 주원료의 장기 입고중단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현상이지만 공급여건 자체가 원활해질 경우 앞으로 빈번해질 수 있다며, 수요-공급사간 파트너십이 깨지는 위험을 감수 하더라도 수급안정을 토대로 제강사들은 품질과 수익중심의 구매패턴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