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 갈 데 없고 일본 외 살 데 없어 … 정치이슈보다 수급논리

2019-08-28     박준영 기자

한일 관계악화 한 달, 스크랩시장의 변화

세관 입회 방사선 전수 검사 전국 확대
통관 일부 지연되지만 수급 차질은 없어
船社 한국운송 기피 해상운임 상승 압력
정치적 이슈로 일본산 수입 막힐 땐
국내 시장도 잠겨 수급대란 생길 수도
전문가들, 상호 의존성 커 가능성 제로 관측


한·일 관계악화 국면이 한달을 넘긴 가운데 양국 스크랩시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혹시나 있을 돌발사태에 대비해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과장·왜곡된 소문을 양산해 수급불안을 야기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상한 ‘가짜 뉴스’는 한일 양국은 물론 제강사·공급사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만큼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 방사선 입회 검수 전국 세관으로 확산

8월 둘째 주 인천 당진 부산 광양 등 주요 세관에서 시작된 일본산 스크랩에 대한 방사선 안전성 검수강화가 4주째를 맞았다. 현재 전국 30여개 세관에서 확대 시행 중으로 알려졌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랜덤(샘플링)으로 해오던 세관원 입회 방사선 검수가 전수방식으로 바뀌면서 통관시간이 6~7시간 지연되고 있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방사선 검사는 일본 출항부터 한국 입항, 다시 하역과 입고까지 4~5단계에 걸쳐 이뤄지고 있어 세관원 입회 검수는 사실상 형식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평소 일본산 스크랩 통관량이 많은 일부 세관에서는 시간 단축을 위해 해당 제강사와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고 한다. 관련 제강사 관계자는 2~3척 선박을 한번에 검수할 수 있도록 세관 관련부서와 일정을 조율한다며, 통관지연이 아닌 방사선 안전성에 목적을 둔 만큼 그 외 부분에서 유기적인 협조를 하고 있다고 했다.

◇ 日 수출업계도 정중동

일본 트레이더와 상사, 수출기업들은 한국 리스크를 느끼고 있지만 대체로 평소와 다름 없이 거래하고 있다. 한 제강사 수입담당 관계자는 “대형 상사의 경우 (일본정부의 수출규제 등에 대해)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소형 트레이더들은 정치상황과 관계 없이 수익에 따라 행선지를 결정한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주장도 있다. 국내 한 트레이더는 “실제로 대형 상사 몇 곳은 한국 오퍼를 기피하는 바람에 확실히 (오퍼)물량이 줄었다”며 “지금은 수급상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시황이 역전되는 경우 상승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레이더 상사 등 공급측 요인보다 해상운송을 담당하는 선사(船社)의 기피현상이 더 우려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는 제강사와 트레이더 모두 똑같이 언급하는 대목이다. 선주들이 통관지체, 체선 등을 우려해 한국 운송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결국 선임인상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 일본산 수입업체 야드, 환경부 단속 소문도

환경부가 9월부터 일본산 스크랩을 수입하는 스크랩기업들에 대해 환경단속을 실시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일부 업체 야드를 방문해 단속을 예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단속 대상, 기준, 범위, 목적 등이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업계 내부에서는 세관에 이어 환경부까지 규제와 단속을 강화해 일본산 수입에 차질이 생기면 미국 등 대체시장을 찾는데 시간이 걸리므로 그 사이 수급불안이 확대되고 시중 물동량이 잠기면서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돌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없다는 못박는다. 무엇보다 연간 수출량의 55%(2018년 기준)를 한국시장에 의존하는 일본 입장에서 한국 시장을 배제하면 400만톤(연간) 물동량을 해소할 판로가 마땅치 않다. 한국 역시 일본 공급선을 빼고 매달 30만톤씩 꾸준히 살 수 있는 대체 시장을 찾기 어렵다. 일본산 공급차질은 시중 물동량 잠김과 연결된 수급대란을 의미하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도 신중하게 다뤄야 할 문제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른 관계자는 설사 일본이 대체시장을 찾는다 해도 일본산 공급이 늘어난 지역에서 다른 나라의 수입량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그 잉여물량이 한국으로 넘어오게 된다면, 글로벌 스크랩 수급구조는 ‘제로섬’과 같다고 했다. 게다가 제강업계가 원료수급 구조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빌레트, DRI 비중을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 미국도 한일 사태 주목 … 대형모선 비중 커지나

실제로 한일 사태에 의한 수급불안에 대비해 몇몇 제강사의 미국 대형모선 오퍼 문의가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성약으로 이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강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 사태를 대비해 수입포지션 변화를 검토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황이 어떻게 급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구체적인 방침을 갖고 신속하게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고 했다.

미국 스크랩업계는 한국이 일본과 거래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반사이익이 가능한 대형 이슈라는 점은 인식하면서도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결국 추이 정도만 살피는 수준으로 전해진다.

◇ 일본산 스크랩 4개월만에 최저 … 8~9월 더 줄 듯
 

7월 한국의 일본산 스크랩 수입량은 29만8천톤으로 전년동월대비 4.8% 감소했다. 3월 이후 4개월만에 가장 적은 물량이다. 또 최근 5개월 연속 감소세가 이어졌다. 7월의 수입감소는 한일 관계악화 직전에 일어난 사안이어서 이번 사태와는 무관하다. 업계에서는 8~9월에도 일본산의 감소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8~9월 수입감소(예상) 역시 정치적인 이슈와는 크게 관련 없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무역업계 한 관계자는 “양국 모두 대체카드가 마땅치 않은 마당에 아직까지 정치적인 이슈로 거래가 지장을 받는 상황은 찾지 못했다”며 “8~9월 일본산 수입감소가 예상되는 것도 정치 이슈보다 시황논리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금년 4~6월까지 일본산 스크랩은 글로벌 시세대비 고(高)평가돼 있어, 한국 제강사들이 적극적으로 수입하지 않았다. 또 8월에는 여름휴가와 전기로 보수, 일본의 오봉연휴가 있었고 9월에는 한국의 추석연휴가 있어 수입수요가 많지 않다. 한 제강사 수입담당자 역시 “양국 사태와 수입업무 사이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으며 지금은 환율(엔高)과 시황논리에 의해 일본산 수입규모와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주 일본 H2 한국행 수출가격은 2만7천엔(FOB) 수준으로 8월초 2만9천엔까지 갔던 호가에 비해 많이 내려왔다. 제강업계는 엔화강세와 일본 내수침체 등 영향으로 하락압력이 더 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트레이더들은 지금 가격수준을 ‘바닥’으로 글로벌 시세방향과 국내 수급상황에 따라 추석연휴 이후 새로운 분수령을 맞게 될 것으로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