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가가 품질을 만든다

2019-04-02     남윤재

[현장칼럼]

이유 없는 물건은 없다
단가 차이가 행선지 갈라


영화 ‘킹스맨’에서 주인공 콜린 퍼스(배우)는 깔끔한 수트를 차려 입고 나와 화려한 액션을 선보인다. 동네 건달들을 제압한 뒤 신사 답게 이렇게 말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들지(Manners maketh man)”. 단순히 세 단어로 구성된 짧은 문장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스크랩업계에도 적용 가능한 격언이다.

예전 고물상에서는 크게 네 가지 타입의 적재 분류방식이 있었다. 첫번째는 생철, 중량, 5:5, 3:7 분류다. 현대제철 구매등급에 따른 것이다. 두번째는 생철, 중량, 경량 식의 분류다. 동국제강 방식이다. 세번째는 생철과 중8:2로 분류하는데 경상권(대한제강, 한국제강 등), 전라권(세아베스틸) 제강사와 거래할 때 방식이다. 네번째는 상철, 중철, 하철로 편의상 분류했다. 그 당시 납품권 가진 대상(大商) 외에 중간납품 업체들이 상당히 많았고 대부분 단일 제강사 납품을 선호하였다.

2009년 10월 한국철강협회 철스크랩위원회가 정한 등급표준화가 시행되고 그 분류기준이 배포되면서 철스크랩의 등급은 생철, 중량, 경량A, 경량B, 선반설로 획일화됐다. 종전까지 사용되던 중8:2, 중5:5, 중3:7 등 등급비율 기준이 없어지고 제강사 구매등급 기준이 통일되었다. 10년이 지난 현재 등급표준화는 완전히 정착하였다. 시장에서 더 이상 분류기준의 혼란은 없다. 어쩌다 상철, 하철, 5:5 얘기가 나오면 ‘(업력이) 좀 됐구나’ 하며 웃어 넘긴다.

최근 중소상들의 분류와 출하는 등급표준화 이전과 매우 다른 양상을 띤다. 생철, 중량은 잘 절단하고 정제해 뒀다가 단가가 가장 좋은 S사로 가는 경우가 많다. 해당 제강사는 이물질 혼입에 대하여 매우 까다롭고 단가 또한 최고수준을 유지하여 거래 신뢰도가 매우 높다. 중소상들 역시 산소절단을 해서라도 깔끔하게 물건을 정리해 놓는다.

경량A, B는 인근 길로틴 가공이나 압축가공 업체로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경량A, B급을 판매하면서 중량급을 동시에 판매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중량물의 품질이 S사로 보내는 물건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길고 기름 묻은 기계철도 많다. 품질문제를 제기하면 “(사는 사람이) 알아서 절단해라. 우리가 자르면 S사에 직접 팔지”라고 말한다. 같은 등급이라도 제강사 납품단가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는 것이다.

유통업체들도 고민이 많다. 경량 소재라면 절단, 압축을 통해 가공마진이라도 챙길텐데 중량물은 고(高)단가 제강사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리스크가 크다. 또 일반 유통상이 중량물을 직납하겠다 하면 ‘아니 왜?’ 라고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단가 높은 제강사로 납품가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상대적으로 낮은 단가의 제강사로 보내겠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의심이 드는 것이다.

수년간 영업일선을 누비면서 ‘이유 없는 물건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건마다 사연이 있고 높은 단가의 제강사에 납품하지 못하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서로 뻔히 알고 있는 정보를 숨기며 납품하려는 것은 매너 없는 행동이다. 매너 있는 거래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들고(Manners maketh man), 단가는 품질을 만든다(Cost maketh qu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