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철업체의 폐업을 보면서

2019-02-13     노재석 前동부제철 상무·스크랩을 말하다 著者

[칼럼]

더이상 사회적 편견 넘을 만큼 경제적 보상 가져다 주지 않아
과거 개발성장 중심 시대의 낡은 사고방식 바꿔야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행복을 위해 타인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자 연대와 조화의 대상이다.

행복한 삶은 사회공동의 목표이고 오늘날 정부의 역할은 이것을 실현하는 데 있다. 사회구성원들에게 특정한 삶과 권리를 강요하지 않고 공정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삶의 다양성과 풍부함이 실현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공동선이 무엇인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행정당국은 다수에 의한 명분과 법이 정한 절차적 정당성을 앞세워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소홀히 취급하는 것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얼마 전 지인이 운영하던 고철업체가 폐업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업장 위치가 수도권 지역의 신흥 도심지역이라 운영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하였지만 폐업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줄은 몰랐다.

지난 20여년간 IMF 경제 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굵직한 사건들을 거뜬히 극복해온 업체이기에 폐업소식은 충격이었다. 고철업에 대한 그의 뛰어난 경영 능력이나 영업수완으로 봤을 때 폐업보다 장소 이전을 선택할 줄 알았는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폐업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끊이질 않는 민원과 그에 따른 행정적인 압력이다. 그간 공지(空地)로 있었던 사업장 주변부지가 최근 몇 년 사이 부동산 개발 붐을 타고 다가구 주택지로 바뀌면서 사달이 났다. 업의 속성상 ‘철강부산물’인 고철을 수집, 처리하는 과정에서 소음, 악취, 먼지 등이 발생한다. 이것이 안락한 주거 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주변 경관에도 악영향을 끼쳐 자산 평가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배척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난 20여년간 문제없이 운영해왔던 사업장을 갑작스럽게 사회악으로 둔갑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수긍할 수가 없다. 가끔 그를 만날 때마다 당국의 행정처분에 강한 불만과 거부감을 드러냈던 사실을 상기해 보면 순조롭게 해결되지 못했던 것 같다. 주변 거주민들의 권리와 고철업체의 권리가 충돌한 것이다.

규정된 정당한 절차를 따르면 결과도 정당화 된다는 행정당국의 자세가 문제다. 권리의 충돌로부터 다수 논리에 의해 지금껏 누려왔던 누군가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 받는다면 진정한 권리는 존재 할 수 없다. 충돌 방지와 원만한 해결을 위해 우리는 법을 동원한다. 그러나 법은 아무리 세밀하게 규정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최소의 한계만을 설정할 수 밖에 없다. 법이라는 권력수단을 동원하는 행정당국은 법의 운영에서 합당성과 합목적성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수의 명분과 절차적 정당성을 갖춘 민원이라 할지라도 행정당국이 지난 20여년을 정상적으로 운영해온 업체를 불법으로 몰아가고 각종 행정압력을 동원하는 것은 공정하고, 정당한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행정당국이 고철업에 대한 사회적 배타성을 조장하는데 앞장서는 듯 비쳐질 수 있다. 누군가의 권리가 침해당했을 때, 그것이 사회전체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지라도 당사자에게 만큼은 부당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행정당국이 말하는 사회 공동선은 무엇이며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 합당함이 충족되었는지 묻고 싶다.

둘째는 행정결정에 있어서 상황 맥락적 사항들은 무시된 채 오로지 법의 잣대로만 접근한다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별탈 없이 지내왔는데, 졸지에 해당 고철업체를 사회 배제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셋째 다수의 사람들이 주거 안녕을 해친다는 이유로 제기하는 민원의 이면에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가치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차마 말할 수 없고, 보편 타당한 주거 안녕을 내세운다.

마지막으로 사회 환경 변화에 대한 고철업계의 대응자세다. 고철업에 대한 사회적 배제 현상에 대해 고철업체가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예를 들어 세무, 민원 등과 같이 고철업체라면 누구에게도 예외일 수 없는 문제들이 해당 고철업체의 문제로만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철강자원협회나 고물상협회 등 전국적인 규모의 조직체는 있지만 고철업계가 직면하는 각종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조직의 생명은 조직구성원들의 보호막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구성원의 안전 문제에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한다면 조직의 존재근거는 사라진다. 업체들이 직면하는 각종 법률적, 행정적인 문제에 대해 협회차원에서 함께 고민하고 대응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직체의 존재 이유는 기본적으로 조직구성원에 대한 안전보호막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인의 폐업이 시사하는 것은 더이상 고철업이 사회의 경멸적 시선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장정보의 투명화, 수요 둔화, 각종 행정규제 등 환경적인 변화는 고철업의 새로운 미래를 암시한다.

동시에 새로운 환경에 어울리는 고철업의 정체성을 재확립해야 하는 노력도 요구한다. 개발성장중심의 시대가 지나가고 환경 중심가치가 된 이 시대에, 고철업은 새로운 외적 변화를 요구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