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은 말렸지만 12년째 흑자행진 … 비결은 군살빼기

2017-06-19     박준영

[인터뷰] 세림철강 곽관성 사장

직원 넷이서 月 2만톤 이상 처리
당분간 고정비와의 싸움서 이겨야
“곧 집게車 한 대 더 줄이려구요”
4차 슈퍼사이클 시작될 때까지
살아 남는 者만 도약할 수 있어
‘세림’은 큰딸 이름…삼일절에 창업
정보 공유하는 것이 내가 사는 길

조선대(경영학) 재학시절 학보사 편집장을 지냈던 곽관성 사장은 졸업 전 일찌감치 신문사에 입사했다. 일선 취재부서에 배치돼 기자(記者)로서 첫 발을 내딛고 싶었지만 광고영업을 먼저 배워야 했다. 결국 인턴과정을 다 마치기도 전에 퇴사하고 새로 들어간 곳이 철강회사다.

그는 1988년 입사해 2003년 명예퇴직 할 때까지 기획, 구매, 자재관리업무를 두루 봤다. ‘고철’은 제강사 과장시절 구매업무를 보며 접해본 것이다. 퇴사 직후엔 창업을 목표로 1년 반 가량 제강사 납품협력사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고철’ 영업을 배웠다. 그리고 드디어 2005년 세림철강을 창업했다. ‘세림’은 그의 큰 딸 이름이다. 설립일은 3월1일, ‘삼일절’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듯 철저하게 홀로 선다는 의미에 딸 아이 이름을 걸고 도전한다는 각오가 있었다. 그 각오엔 ‘단기간의 이익추구보다 오래 하는 게 진짜 사업가’라는 명퇴자의 눈물이 묻어 있었다.

처음 고철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경찰서장을 지낸 그의 장인은 탐탁치 않게 여겼다고 한다. 고철업을 하려면 1993년 이전까지 관할 경찰서장 승인을 받아야 했다. 이른바 고물영업법(1963~1993년까지 시행됨)이다. 곽 사장의 장인은 결재권자로서 옛날 기억을 떠올리며 ‘그렇게 할 일이 없는가, 왜 하필 고철인가, 장물쟁이가 뭔지 아나?’ 했다고 한다. 곽 사장은 ‘고철은 환경산업이고 가치 있는 일이며 제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나서 가장 잘 아는 일’이라고 장인을 설득했다. 세림철강 회사명함에 고집스레 전남 담양 메타세콰이어 길 풍경을 새겨놓은 것도 그런 이유다.

세림철강은 2005년 첫 해 15억원의 매출을 시작으로 2016년 430억원, 금년에는 850억원을 목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난 12년 간 한 번도 적자경영을 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 신경남과 함께 세아베스틸 상위 협력사로 자리 잡았다.

전북 군산 새만금로에 있는 3500평 야드에는 곽 사장을 비롯해 전 직원이 4명뿐이다. 전북지역 최대 스크랩기업으로는 믿기지 않는 인원이다. 곽 사장이 영업과 자금을 총괄하고 경리담당과 현장소장, 집게차 기사가 유통물량을 포함해 월 2만톤 이상 소화해 낸다. 회사든 조직이든 사람이 너무 많으면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서로 책임회피를 하며 CEO부터 게을러진다는 게 평소 그의 생각이다.

그는 향후 수년 간 스크랩업계는 고정비와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현재 시장구조에서는 아무리 잘 해도 매출액대비 영업이익률이 카드수수료(1.6%) 정도 밖에 되지 않아요. 집게차(車) 3대 있던 걸 2대로 줄였어요. 금년 하반기에는 한 대 더 줄이기로 했어요. 고임금의 우리 직원이 아니더라도 합리적인 운반비의 용역집게차가 얼마든지 있어요. 철저하게 군살을 빼고 수익을 중시하지 않으면 좋은 시절이 오기 전까지 버티질 못해요. 적자가 누적돼 파산하면 사랑하는 가족들과 거래처 등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안겨주게 됩니다. 그 때 가서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곽 사장은 업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話頭)로 자원시장의 슈퍼사이클을 이야기 했다. 원자재 슈퍼사이클 이론은 회복-상승-후퇴-불황 등 4단계가 각각 5~10년 간격으로 총 20~30년간 하나의 거대사이클을 이룬다는 이론이다.(2013년 삼성경제연구소) 제2차 슈퍼사이클은 1965년부터 1997년 상반기까지 약 30년간 진행됐다. 1997년 하반기부터 제3차 슈퍼사이클이 시작돼 회복-상승기가 2012년에 완료됐고 2013년 이후부터 후퇴-불황기가 진행 중이다. 이론대로라면 2017년 현재는 후퇴기의 종반쯤 지나고 있고 본격적인 불황기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

“슈퍼사이클의 내리막 구간(후퇴-불황기)에서는 저(低)마진이 불가피합니다. 2013년 이후 벌어지고 있는 시황은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아요. 고정비가 자기 역량 이상으로 많이 나간다면 회복기가 오기 전에 버티기 힘듭니다.”

그는 슈퍼사이클의 저점은 2025년쯤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위기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중입니다. 최근 2~3년 사이 국내 10대 스크랩납품업체 중 절반 정도가 파산을 면치 못했어요. 이제부터는 납품협력사를 거쳐 앞으로 중대상으로 위기가 확산된다는 뜻이에요. 다행히 지금의 납품업체들은 이미 경험을 통해 과당경쟁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조적으로 시황을 보지 못하는 분들은 아직까지 위기를 체감하지 못해요. 예전 하던 식으로 하면 언젠가 나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그는 중대상들의 치킨게임을 지적했다. “지금 일부 시장에선 서로 죽일 듯이 싸워요. 그러다가 먼저 죽을 수 있다는 걸 몰라요. 누군가 죽더라도 그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다시 등장합니다. 그러니 치킨게임은 끝이 없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멸하게 되니 전략으로써 무의미한 거죠. 제 생각엔 2025년 이후에나 스크랩업계에 새로운 가치관과 롤 모델이 형성되리라 생각해요. 그 때까지 생존해 있으면 재도약의 기회를 얻게 될 겁니다. 그러려면 우선 살아 남아야죠.”

세림철강이 직원 4명으로 월 2만톤 이상 물동량을 취급할 수 있는 건 철저한 JIT(Just In Time) 개념으로, 과거 재고전략으로 시세차익을 올리는 스크랩업계의 관행을 타파했기 때문이다. “야드에는 중고자재가 많고, 스크랩은 별로 없어요. 재고를 최소화하면서 흘려 보내는 데 중점을 둡니다. 요즘 자주 입고통제가 실시되는데 (야드 물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딱지’는 모두 거래업체들에게 줍니다. 혹여 딱지가 모자라도 모른 체 하지 않아요. 우리 야드에 다 받아주려고 합니다. 그 물량마저 상황이 풀리면 바로 출고합니다. 그래야 상하차비, 재운반비, 재고유지비, 재고감모 손실비를 최소화 할 수 있어요.”

곽 사장은 2014~2015년 2년 간의 기록적인 하락장(場)에서 견딜 수 있었던 비결은 슈퍼사이클의 내리막길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야드 재고를 적게 가져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멋모르고 (재고) 쌓아놨으면 큰 일 날 뻔 했어요.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고철은 아래에서 위로 흘러요. 거래처를 대할 때 그 사실을 명심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늘 시장과 트렌드를 연구하는 겁니다.”

그는 ‘시장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과거의 경험과 지식만으로 어떻게 사업을 지속해 나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정보철’이라고 써진 두툼한 종이파일 하나를 펼쳐 보였다. 전문신문 기사와 통계자료를 출력해 틈틈이 공부하고 오피니언 리더들의 칼럼도 꼼꼼히 챙겨본다고 했다.

“정보철을 갖고 다니면서 거래처 사장님들과 같이 공부하고 의견도 나눠요. 정보를 혼자 독점하려고 하면 오독(誤讀) 할 수 있어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현상의 단면만 보다가 잘못 해석하고 헛다리 짚는 경우가 있지요. 그러나 정보를 공유하면 제 의견과 해석을 검증 받을 수 있고, 때론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정보 이면의 것들을 깨닫기도 해요. 정보를 공유할수록 제 시각이 넓어지는 겁니다”

그는 슈퍼사이클의 저점을 통과해 살아 남으려면 우리 업계가 고정비를 줄이고 정보를 잘 활용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스크랩워치 등) 전문신문을 통해 정보가 보편화되고 나서 요즘 공장 발생처의 90%는 신문에 나오는 시세를 기준 삼아 입찰을 봐요. 정보접근이 쉬워지고 예측이 가능해지니까 제강사들은 정책을 펴는데 과거처럼 시황에 흔들리지 않아요. 저는 거래처들에게 늘 최종 수요자인 제강사의 구매정책을 홍보하고 반감 없이 따르라고 합니다. 그게 변화된 생존의 방식이고 첫 번째 조건이죠. 그만큼 시장은 투명해지고 왜곡으로부터 균형을 찾는 능력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그는 한 때 직업기자를 꿈꾸었던 학보사 편집장 출신답게 정보를 대하는 생각이 남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