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기업 2세 의미 있는 만남 “제가 먼저 시작 할게요”

2세모임, 막연하지만 시작이 중요 미루지 말고 나 먼저 적극 참여를
협력해야 풀 수 있는 문제들 산적 함께 하면 불가능도 가능해 질 것

2016-08-31     윤연순 기자

[인터뷰] 정상민 동진자원 실장

세대 간극, 결국 2세대가 풀어야 할 숙제

“스크랩 2세라는 타이틀이 늘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장님과 직원들 사이에서 애매한 존재감. 무엇보다 경험 많은 아버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발견할 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2세들은 아버지 그늘에서 조용히 직장생활을 합니다. 적극적이지 못하고 도전의식도 결여된 상태죠.”

동진자원 정상민 실장은 스크랩 경영 2세들의 고충과 부담감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고 존재감 없이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할 수도 없다. 주어진 현실에서 그들의 역할과 책임이 있다. 그렇게 의욕적으로 일을 하다보면 아버지와 부딪힐 때도 많다. 정 실장의 부친은 제8대 한국철강자원협회장을 지낸 정은영 동진자원 사장이다.

“1세대가 아무리 끌어주고 지원해 줘도 2세대와 근본적으로 생각이 다릅니다. 회사 운영에 관한 생각, 물건을 사고 팔 때의 기준, 우리 업에 대한 미래와 비전까지도 아버지와 아들의 생각은 완전히 다를 때가 많습니다. 조율 과정에서 목소리도 높아지고 아버지께 와락 대들기도 하지만 다행스러운 건 그때뿐이죠. 돌아서면 후회하고 결국 아버지의 경험이 옳았다는 걸 깨닫습니다.”

전화 한 통으로 필요물량 확보하는 1세대 노련함 존경스러워

그는 경험이 얼마나 무서운지 어느 순간 깨달았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영업, 단가와 시황 파악, 이 정도는 야드에서 몇 년만 일해 보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노련해진다. 하지만 아버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 있다.

“납품처(주물공장)에서 가끔 필요한 제품과 물량을 콕 집어 요구해 올 때가 있는데 아버지는 전화 몇 통화로 능숙하게 필요한 제품과 물량을 확보합니다. 주변 스크랩업체를 상대로 서로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협력을 하는 거죠. 이런 공조는 서로간의 신뢰는 기본이고 상대 업체의 취급 품목과 관리 상태를 꿰뚫고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결코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거죠.”

그는 스크랩 경영 2세들과 이런 공조를 해보고 싶다. 신뢰와 경험, 능숙함이라는 3박자를 모두 갖춰야 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막연하게 2세들과의 만남을 생각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더 늦기 전에 2세들의 모임을 추진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나 자신조차 2세 모임을 누군가가 만들어 주기만을 바라고 있었어요. 다들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을 겁니다. 아까운 시간만 빠르게 흘러가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거창한 모임도 좋지만 개별적인 작은 만남부터 시작해 차츰차츰 큰 모임으로 키워나가는 것도 방법이죠. 시작이 중요한 만큼 나부터 2세 모임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생각입니다. 제가 어떤 분께 연락을 드리고 만남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은 연락을 주셔도 좋습니다. 만나서 얼굴 보고 대화하고 친해지면 더 많은 일들이 생겨나고 협력해야 풀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작은 모임부터 차근차근…시작이 중요해

정 실장은 군 제대 후 26살 때 스크랩을 배웠다. 다행인 건 일이나 현장에 대한 거부감이 남들보다 적었다. 그 때문에 일에 대한 적응도 빨랐다. 그 중에서도 철스크랩 선별에 대해선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 2세들과 만나면 현장 경험과 스크랩 선별 요령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서로 작은 것부터 협력하고 교류하고 싶은 생각에서다.

“주물용은 제강용에 비해 성분이 중요합니다. 중요한 건 성분분석기로 판별을 하지만 일이 바쁘거나 거래처에서 장비가 없을 땐 다양한 방법으로 성분을 구별해 냅니다. 철이 구부러지는 강도라든지, 땅에 떨어뜨려 울림소리를 듣고 판별해 내기도 합니다. 잘 구부러지면 저망간, 산소 불에 대서 연기가 나면 코팅제품, 망치로 납작하게 두드려 표면이 일어나면 주석도금, 색깔이 푸르스름하면 EGI 저망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소한 것이지만 현장의 작은 경험을 2세들과 나누며 소통하는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그는 이렇게 소규모로 시작한 모임이 세월이 흐르면 철우회(경인권 친목 골프모임)와 같은 큰 모임으로 성장할 것이고 1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스크랩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건 서로 의지하고 돕는다는 뜻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혼자가 아닌 함께라면 가능해 집니다. 1세대가 풀지 못한 우리 산업의 문제점들은 2세대에 숙제로 넘어 왔습니다. 법률, 세무 등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고 환경, 안전 등의 규제에 늘 힘겨워 했습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생각으로 머리를 맞대면 스크랩산업의 격도 저절로 올라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