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철에 흙 뿌린 직원 호되게 야단치고 물로 한참을 씻어냈죠”

이은무 창덕스틸 대표

2015-12-08     윤연순 기자

가혹한 스크랩 기업 세무 조사
부가세매입자납부제 해법 되길
힘든시장 부실 업체 퇴출 기회
우리산업 안정화·선진화 될 것

“최근 3개월 참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정직하게 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법이라는 굴레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은 돈보다 더 큰 상처로 가슴에 남았고 당분간 힘은 들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겠노라 다짐했다.”

창덕스틸 이은무 대표 책상위로 각종 회계장부가 수북이 쌓여있다. 얼마 전 받았던 세무조사로 웬만한 장부와 서류를 세무서에 다 오픈했다. 지치고 허무한 마음에 서류를 치울 생각도 못했다. 주변에선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말렸지만 분명한건 그 스스로 부정하지 않았고 잘못된 게 없음을 꼭 입증해 보이고 싶었다.
 


-세무조사 우리업계 고충이자 풀어야 할 숙제

스크랩업체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게 바로 세무조사다. 일단 표적이 되면 피해갈 수 없다. 잘못한 게 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겠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법의 심판을 받아야하는 게 힘든 거다. 두들겨 맞는 추징금은 둘째 치고 억울한 마음은 풀길이 없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우리업계 모두의 고충이고 풀어야할 숙제다. 철강자원협회가 이럴 때 역할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대형로펌과 협약을 체결해 체계적으로 자료를 모으고 하나된 통로(협회)를 통해 대응하면 얼마든지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회원사들이 똘똘 뭉쳐 굳건한 협회를 만들고 난 후에야 가능한 일이다.

-부가세매입자납부제 반드시 도입해야

이번 세무조사에서 부가세 폭탄이 문제가 됐다. 아무리 소명을 해도 안 되더라. 작은 기업이 정부기관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다행스러운 건 내년 10월경 철스크랩에도 부가세매입자납부제가 시행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 제도에 반대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꼭 시행했으면 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시행 초기에는 크고 작은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우리업계가 걱정하는 문제(자금운용, 업무과다, 의제매입액 환급)는 충분히 감당하고 풀 수 있는 작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우리에겐 공급처를 상대로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영업할 수 있는 이로운 제도가 될 것이다. 문제가 되는 건 건설사, 조선업체 등 발생처이지 우리가 아니다.

-시장 힘들다지만 구조조정 통해 안정화 될 것

지금 시장 힘들다하지만 방향은 맞는 것 같다. 2년간 꾸준히 가격이 빠지면서 부실한 업체들이 정리되고 있다. 은행돈을 무리하게 끌어 쓰거나 물건에 장난을 친 업체, 마진까지 포기해가며 양만 추구했던 업체들이 퇴출되면서 시장이 구조조정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뿐아니다. 모 제강사에서 가공장비를 매각하며 수요-공급사간 역할을 분명히 해가는 등 시장의 작은 움직임들이 큰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시기만 잘 버티면 스크랩산업도 새로운 체계를 만들고 안정화 될 것으로 믿는다.

- '첫 사랑' 동부제철, 좋은 기억만 남겼다

첫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동부제철 생각이 많이 난다. 동부제철 전기로에 불 집힐 때(2009년)부터 시작해 불을 끌 때 까지 함께했다. 동부제철 초기 납품업체 중 유일하게 끝가지 남은 업체가 창덕스틸이었다. 동부제철 원료팀 직원들과도 좋았던 기억이 많다. 서로가 정보도 공유하고 원료팀에서 매일 전화가 올 정도로 창덕스틸을 신뢰했다. 우리는 유통시장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애썼고 이를 바탕으로 동부 역시 단가와 협력사 운영을 적절하게 잘했던 것 같다. 동부가 위기를 맞았을 때(전기로사업 정리)도 협력사와의 관계를 잘 정리해 줬다. 미리 회사 정보를 협력사에 통보해주고 손해가 가지 않게 대처할 수 있는 시간과 도움을 주었다. 당시 맘고생은 했지만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 지금은 세아베스틸과 협력사로 일을 한다. 동부제철에서 그랬던 것처럼 든든한 동반자로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이다.

-부정하게 돈 벌 생각 추호도 없어

건설회사 개발사업부에서 20년을 근무했다. IMF 여파로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퇴사했다. 2008년 11월 창덕스틸 법인이 설립됐다. 가까운 지인이 고철장사하면 부도 날일 없고 굶어 죽지는 않는다며 한 번 해볼 것을 권유했다. 신탄진에 1천평 야드를 얻어 스크랩을 무작정 시작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당시 경험 많은 장비기사(집게) 한 명이 야드를 관리했다. 어느날 야드를 둘러보던 중 장비기사가 스크랩에 흙을 뿌리고 있길래 '왜 그러냐'고 물으니 원래 스크랩은 이렇게 하는거라 답했다. 야단을 치고 호숫물로, 뿌려진 흙을 한참동안 씻어냈다. 오래된 얘기지만 가끔 이런 얘길 주변사람들에게 들려주면 그땐 장사꾼 '때'가 묻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부정한 짓으로 돈 벌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 때문일까. 당시 입고했던 제강사에 창덕이라는 상호만 뜨면 무검수로 물건을 받아줬다. 신뢰란 이런 게 아닐까. 스크랩업계에 신뢰가 쌓이면 상생은 따라 오는 거다. 어려운 시기 우리업계가 잘 버텨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