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5년 기획] 싸다고? 수율 떨어진다고?…선반설의 재평가

2014-07-10     강광수 기자

연탄형태 압축가공 수요 늘어나
가공업체 늘어나며 유통지도 바꿔
품질관리 잘하면 수율 90% 넘기도

 

상품가치를 기준으로 철스크랩 등급 가운데 맨 밑에 위치하고 있는 선반설(旋盤屑). 그 선반설이 요즘 주목받고 있다. 오랫동안 스크랩 업(業)을 해오던 사람들조차 선반설의 가치를 활용할 줄 몰랐다. 그동안 저평가된 선반설을 고부가가치 아이템으로 만들어보려는 시도가 요즘 영남권시장을 중심으로 성행 중이다.

과거 섞어 먹는 용도쯤으로 취급 받던 선반설이 뜨거운 감자가 된 배경엔 제강업계의 강화된 검수와 유통시장의 진일보한 가공화가 있다.

선반설은 품질관리가 어려운 대표적인 스크랩이다. 보존기간이 짧고 1톤 미만 발생처 비율이 높아 수집비용이 상대적으로 더 든다. 풍화, 산화가 쉬운 물질특성 상 옥내 보관을 해야 하고 제강사의 감량리스크도 큰 편이다. 게다가 시황 변동에 따른 손실 위험까지 고려한다면 이물질 고의 혼적 같은 ‘검은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다. 선반설 한 차(車, 25톤)에 스케일 1톤 뿌린다 해서 육안식별이 잘 되지 않는다. 이물질 혼입이 용이하다는 얘기다. 그런 특성 때문에 발생처나 중간상인들이 오해받는 일도 허다하다.

제강사들은 질 좋고 깨끗한 선반설을 얻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한다. 검수를 까다롭게 하는 대신에 고(高)단가 구매정책을 쓰기도 하고 납품협력사 가운데 한 두 곳만 지정해 선반설 납품창구를 단일화한다. 다양한 상태의 선반설을 일일이 관리할 필요가 없고 품질 역시 납품협력업체를 통해 필터링할 수 있는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다.

선반설 가공설비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일반 4각 압축기에 선반설을 막 찍어다 상품화해 보기 시작한 것이 5~6년 전 일이다. 요즘 트렌드는 일명 ‘파마분철’을 모재로 단괴(연탄형태) 압축하는 것이다. 이런 제강용 가공 업체들은 2~3년 전부터 급격히 늘어나 부산·경남지역에서만 10여 개 사가 된다.

가공수요가 늘어나면서 선반설 유통지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예전부터 선반설은 영남권 시장에서 특히 인기아이템이다. 발생량이 많을뿐더러 지역 전기로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료(선반설)를 가져다 원가절감을 시도했다. 경인·충청권에서 영남권으로 내려오는 물량들도 많았다. 그러나 요즘엔 전기로 제강사에 직행하거나 영남권으로 쏠리던 현상이 많이 줄었다. 전기로제강사에 직행하던 물량이 줄어든 것은 중간에 가공업체로 흐르는 물량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이고, 영남권으로 흐르던 물동량이 줄었다는 것은 수도권·중부권에서도 선반설 압축가공 전문집들이 등장하면서 중간에 물동량을 흡수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영남권 제강사들은 선반설 입고량을 늘려보기 위해 고(高)단가 정책을 펴보기도 하지만 쉽지 않다. 선반설 압축가공업체들의 구매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남권의 한 납품업체 관계자는 “최근 들어 선반설 유통경로가 크게 바뀐 것은 제강사로 곧장 입고돼 감량이나 퇴송위험을 안는 것보다 그런 걱정이 상대적으로 적은 중간 가공업체를 선호하는 바닥유통상인들의 심리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제 확실하고 납품 편하게 해주는 곳에 매물심리가 몰리기 마련 아니냐”고 했다.

선반설 압축가공업체들은 소량입고가 가능해 그만큼 운반비가 절감되는 효과가 있다. 품질에 대한 의사소통이 제강사에 비해 용이한 것도 강점으로 작용한다. 압축 선반설은 품질관리가 잘 됐을 경우 제강사에서 중량B 수준의 높은 단가를 책정해주기 때문에 가공업체들이 시중에 나가 모재를 살 때 제강사의 선반설C 단가 이상 가격경쟁력을 갖게 된다.

선반설 가격상승을 이끄는 중심엔 압축가공집들이 있다. 이 때문에 경쟁적인 설비도입이 시장수급과 가격왜곡을 초래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공설비를 줄이고 예전으로 돌아가면 과열된 시장이 안정을 찾게 될까. 지난 3월 영남권 대형 선반설 가공업체인 한도산업이 부도 처리됐다. 20여개 주요 거래처를 보유하고 월 1천 톤 이상 선반설을 취급했던 곳이다. 이 여파로 선반설 경쟁이 완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시장판도는 반대로 흘렀다. 물량경쟁이 더 과열되고 가격상승을 부추겼다.

막연한 우려보다 유통시장을 합리화하고 보다 많은 참여자들에게 이익을 돌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의 근접이 필요하다. 시장수급을 무시한 무분별한 시설투자는 공급과잉·모재확보경쟁의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문 가공설비를 통한 체계적인 유통시장 구축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온다. 일반적으로 선반설의 제강수율이 70~80%에 불과하지만 압축 가공한 단괴형태로 납품될 때 90%까지 높아진다고 한다. 제강업계 입장에서도 수율향상과 품질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는 길이라면 유통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선반설 혁명’이 반가울 것이다.

앞으로는 제강사들은 선호하는 스크랩만 골라먹는, 선택형 소비시대가 올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량이 생철 가격을 웃도는 식의 등급질서의 파괴현상도 나온다. 똑같은 선반설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제강사는 장입성이 좋다는 이유로 가루나 바라(일본어) 형태를, 또 어떤 제강사는 단괴형태 선호해 구매색깔을 차별화해 나갈 것이다.

한 중견 제강사 제강팀장 출신의 한 관계자는 선반설은 품질관리만 제대로 되면 더 없이 훌륭한 철강원료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수년전 원가절감을 위해 선철 대체재를 찾았을 때의 일화를 들려줬다. “MB의 경우 역시 고가(高價)인데다 수급이 쉽지 않아 부적합하다고 판단했어요. 고로에서 나오는 선 지금(괴)은 수율이 낮았고요. 결국 주물 선반설을 최적의 대체재로 판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반설이 꽤 메리트 있다고 보고 일반 선반설의 장입비율을 40%까지 올렸더니 놀랍게도 전체 수율이 92~93% 나왔습니다. 그 뒤로 값싼 선반설을 활용한 원가절감을 모색하게 됐지요”

일부에서는 선반설이 용해 시 집진기에 빨려들어가 집진기를 막히게 하고 수율도 저하시킨다는 지적도 있으나 장입방식의 개선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선반설 시장의 과열현상에 대해 한 가공업체 대표는 “지금 시장에서 벌어지는 웃돈 경쟁은 물량을 많이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좋은 품질을 얻기 위한 제한적인 현상이다. 결국 고의 혼적이나 품질관리가 엉터리인 공급자들은 시장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