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6:00 (수)
스크랩은 철을 만들고 철은 스크랩을 만든다
스크랩은 철을 만들고 철은 스크랩을 만든다
  • 김경식 고철연구소장 · 前현대제철 기획실장(전무)
  • 승인 2021.10.07 09:22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크랩업 종사자들이 읽으면 좋을 추천冊]

20년前 순환경제 눈 뜨게 한
내 인생의 책 <에코이코노미>
현대車 자원순환그룹 컨셉, 이 때 개발
鐵의 사회 역사 문화 알수록
業의 자긍심과 소명의식 높아져
스크랩은 순환경제의 모범사례


크리스마스 축제 열기로 가득한 2004년 12월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필자는 세계적인 항공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Yann Arthus-Bertrand)과 심각한 표정으로 마주 앉았다. 그해 6월 홍보팀장(현대제철)을 맡고 친환경 컨셉에 따라 홍보영화 제작에 착수했는데,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상징적 인물을 출연시키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여 당시 항공사진작가로 명성이 높았던 베르트랑을 섭외했다. 베르트랑은 오늘날 친환경 운동가의 대표격인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같은 존재였다. 회사에서도 본부장(한정건 전무)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15억원이라는 큰 예산을 받아 세계 15개국 현지촬영을 기획한 야심작이었다.

그런데 정작 출연을 약속했던 베르트랑이 “(환경운동가로서) 공해기업(철강회사)의 홍보영화에 출연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바꾸었다. 기획사를 통해 사전 섭외 땐 출연이 가능하다고 해 20여명의 국내 촬영팀과 대규모 장비를 이끌고 현지에 도착했는데, 참 막막했다.

그때 혹시나 하고 준비해갔던 레스트 브라운(Lester R. Brown)의 저서 <에코이코노미·ECO-ECONOMY>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레스트 브라운은 책에서 ‘지속가능한 사회건설을 위해 새로운 자원을 훼손하기보다 이미 개발된 자원을 재활용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철스크랩을 꼽았다. 마침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베르트랑의 사진집 <하늘에서 본 지구> 서문에도 레스트 브라운의 ‘에코이코노미를 건설하자’는 문구가 등장한다. 베르트랑이 두 권의 책을 살핀 뒤 이후로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렸다. 철(스크랩)에 의한 순환형 생태경제에 공감한 것이다. 

◇ 세계적인 환경운동가를 설득한 논리

필자는 홍보팀장(2004년)을 맡기 전 2003년 <에코이코노미>를 번역한 한국생태경제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에코이코노미>는 요즘도 곁에 두고 읽는 인생의 책이다.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수소경제 등 요즘 전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에너지 환경 이슈들은 이미 20년 전 <에코이코노미>에 의해 주장된 것들이다. 이 책을 통해 터득한 논리를 현대제철 사외보 <푸른연금술사>에 기고하여 철스크랩은 물론 철강업계 종사자들이 자긍심을 갖도록 했다. 필자가 강조한 대표적인 홍보논리는 △철스크랩은 90% 이상 회수되고 40회 이상 재사용되며, 1톤의 철이 10톤의 철로 재탄생한다 △철스크랩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전기로 제강은 철광석의 용광로 공법보다 단위당 에너지소비량이 1/3, 이산화탄소 배출은 1/10에 불과하다 등이다. 지금은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당시로선 신선한 논리였다. 필자의 개인연구소인 ‘고철연구소’도 이때 작명한 것이고 외부기고를 쓸 때도 ‘고철’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 논리는 ‘2050 탄소중립’ 시대에 다시 부각되고 있어 논리개발에 앞장섰던 한 사람으로서 보람을 느낀다. 또 2006년 현대차그룹이 당진에 일관제철소 건설을 선언했을 때 혹자는 용광로 건설로 현대제철의 자원재활용 이미지가 수명을 다했다고 지적했지만 필자는 현대차그룹이 ‘세계 최초의 자원순환형 그룹’으로 도약했다는 새로운 논리를 개발했다. 용광로 쇳물로 자동차를 만들고 폐차가 되면 이를 다시 현대제철의 전기로에서 녹여 새로운 철로 재탄생시키는 자원순환의 사이클이 완성된다는 논리다. 이 논리는 15년이 지난 현재도 현대차그룹의 공식적인 대외 논리로 사용되고 있다.

 

◇ 책은 우리業에 대한 이해의 폭 넓혀

우리가 철과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은 일차적으로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지만 철로 인한 사회·경제의 변화 그리고 그 축적의 과정에서 역사의 발전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자기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소명의식을 갖기 위함이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가 읽은 책 가운데 몇 권을 추천한다. 

강창훈의 <철의 시대>와 권오준 前포스코 회장의 <철을 보니 세상이 보인다>는 철이 가진 소재의 특성과 역할, 철로 인한 인류사회의 발전을 다양한 관점에서 소개하고 있는 역작이다. 강창훈은 전공(동양사학)을 살려 철의 역사적 의미와 이해를 넓히는데 도움을 준다. 권오준은 금속공학 전공자로서 소재와 기술적인 면을 차별화 했는데, 한국철강사(史)에서 철을 이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정리한 책은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역작이다. 철기문화재를 통해 철의 역사적 의미를 분석하고 정리한 책으로, 2017년 특별전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이 펴낸 <쇠 철 강>을 추천한다. 역사유물에 대한 해석은 물론 철에 의한 사회경제 변화상을 잘 보여준다. 

김동환·배석의 <금속의 세계사>도 철강(스크랩)인이라면 반드시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인류문명을 바꾼 7가지 금속 -구리 납 은 금 주석 철 수은-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인류가 구리를 알게 된 시기는 B.C. 9500년경이고 철을 다룬 시기는 B.C. 2100년이다. 구리와 철 사이에 7400년이란 긴 시간이 있는 것은 열을 다루는 기술력 때문이었다. 구리가 녹는 점은 1,084℃, 철은 1,538℃다. 454℃ 올리는데 7400년이 걸린 셈이다.  

이석수의 <3평 고물상의 기적>, 유정수의 <소중한 이웃>, 스크랩워치의 <스크랩워치 인터뷰북> 등은 훗날 철스크랩업계의 역사적 자료로 인정받을 만하다. 고전(古典)은 당대의 치열한 삶을 기록한 책이다. 사회안전망과 제도적 지원에서 소외되어 오직 성실함과 건강한 육체로 기업과 산업을 일군 스크랩 종사자들의 생생한 삶의 기록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회자될 것이다. 그들은 왜 그렇게 살았으며, 그들의 삶을 규정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차별은 어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이제는 당당한 탄소중립 사회실현의 가장 큰 공헌자가 되기까지 스토리는 때로 문학으로, 때로 드라마 주제로, 때로 역사적 사료로 부활할 것이다. 특히 유정수의 책은 사회적 멸시와 교육과 금융 등 제도적 차별속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온 재일동포들의 이야기는 물론 고철을 산업적 차원에서 학문적으로 분석을 한 역작이다.

필자는 2004년 철스크랩의 친환경 홍보논리를 개발한 뒤 우리부터 먼저 논리무장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현대제철)스크랩구매팀장들을 모아 교육했다. 이후 한 팀장이 교육내용을 다른 스크랩세미나에서 소개했는데 당시 그 세미나에 참석했던 한 스크랩기업 대표가 ‘고물장사에서 생태사업자로 다시 태어나는 가슴 벅찬 감동을 토로했다’는 뒷얘기를 전해 들었다. 현업에서 퇴임했지만 필자가 지금도 2050 탄소중립 시대 철스크랩의 중요성과 지원제도의 필요성을 <중앙선데이> 칼럼을 통해 지속적으로 알리는 것은 이 때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와 앞서 소개한 책들의 영향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책은 모란미술관이 출간한 <거친 쇠붙이에 깃든 영혼>이다. 철 조각의 선구자 송영수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40세(1930~1970)에 요절한 서울대 미대 조소과 송영수 교수는 우리나라 조각가 최초로 철을 다룬 인물이다. 철스크랩이 조각의 소재로 등장한 것은 용접기술과 접목되면서부터 인데 용접조각의 선구자로는 그 유명한 입체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y Picasso)가 있다. 전통의 파괴로부터 새로운 창조를 시도한 피카소는 조각의 속성인 견고함과 무게감을 부정하면서 덩어리로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간을 수용하고 정의하는 방식의 조각을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철사를 용접하여 ‘공간 속에 드로잉’하는 방식의 형상을 만듦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미술사가 김이순). 이런 성향은 미국,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까지 전파되었다. 6.25 전쟁으로 모든 물자가 부족했지만 유독 넘쳐나는 게 하나 있었으니 스크랩이었다. 서울 원효로에 살았던 송영수는 집 근처 철도기지창에 산더미처럼 쌓인 스크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957년 국전에 스크랩을 용접 조각한 추상작품을 출품하였다. 책은 스크랩이 어떻게 예술작품으로 재탄생되고 예술적으로 다양하게 표현되는지 보여준다. 또 용접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표현기법으로 널리 시도되고 있음도 알려 준다. 필자의 연구실에는 스크랩의 순환적 의미를 표현한 작품이 있다(사진 참조).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조각가 윤성필 작가의 <ENERGY 19>다. 열연강판 스크랩을 ‘뫼비우스의 띠’로 조각해 처음과 끝이 만나 끝없이 반복되는 철스크랩의 순환성을 표현했다. 고철연구소의 취지와 부합한다며, 윤작가가 대여해 주었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면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글귀의 표지석이 있다. 우리 삶의 수단인 철스크랩이 예술소재로, 철강원료로, 탄소중립의 핵심 자원으로 제 역할을 다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려면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이 기록해두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 이 기록들을 책으로 만들고, 그 책은 다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풍요를 가져다 줄 것이다. 마치 스크랩이 철로, 철이 스크랩으로 순환하는 것처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곽관성 2021-10-08 16:32:53
존경스럽습니다. 얖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십시오

한울 2021-10-07 10:46:2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원성환 2021-10-07 10:09:45
김경식 소장님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ssmetal.co.kr